열심히는 하는데 영토를 엉터리로 알고 있다보니 모든 해석이 엉망이 되는 안타까운 채널
통일신라 영역을 제대로 모르니 발해, 금나라, 고려가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금나라가 통일신라의 영역에서 건국된 국가고 그들도 신라 백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사마르칸트까지 이어져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전성기 고구려의 영역까지 감안하면 몽골까지도 고구려의 신민이었으니 거란,몽골 모두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는게 이상할게 없다.
발해인의 금나라 순응 이유: 역사적 흐름과 민족 정체성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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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1:13] 발해 멸망과 고려 귀부
- 926년 발해 멸망 직전·직후 다수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귀부함.
- 대표적 인물: 대광연(발해 세자).
- 그러나 대부분의 발해인은 고토에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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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3~02:30] 요나라 치하에서 발해 부흥 운동 전개
- 요나라는 발해를 ‘동란국’으로 개명하고 수도 상경을 혼난성으로 변경.
- 바레인들 일부는 요양으로 강제 이주됨.
- 후발해, 정한국, 흥료국, 대발의국 등 부흥국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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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0~05:27] 다양한 발해 부흥국의 등장과 소멸
- 후발해: 후당·북송과 외교 기록 존재. 올야국과 동일 가능성.
- 정한국: 마의 종족 기반, 요에 의해 멸망.
- 흥료국: 대조영 7세손 대현림이 건국, 고려에 도움 요청했으나 거절당함.
- 대발의국: 고영창이 건국, 금나라에 지원 요청 → 이후 배신당해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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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07:12] 금나라와의 협력 선택
- 금나라 건국자 아골타에게 협력한 인물 ‘양박’은 발해인 출신.
- 금나라가 고영창의 배신을 눈치채고 공격, 발해 부흥 마지막 흔적 소멸.
- 이후 다수 발해인들이 금나라에 항복하고 체제에 편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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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9:44] 금나라 관직 진출한 발해인들
- 대달부랴(=대고): 금태조의 양자로 입적, 맹안·모극 겸임.
- 고정, 장연소 등도 맹안·모극 등 군사 직책에서 활약.
- 이석(=이수): 금세종의 외삼촌으로 정1품 ‘참지정사’까지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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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12:44] 발해 출신 황후들
- 금나라 황제의 어머니·아내 중 다수가 발해인: 정의황후, 자원황후, 광원황후, 소성황후.
- 금나라 중기까지 바레인 출신 여성들의 정치적 영향력 매우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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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4~13:53] 차별 vs 견제 논란
- 산둥 지역으로 강제 이주 기록 존재 → 바레인 불만 증가.
- 금희종 시기 발해인 중심의 군권 축소 → 타민족 차별이 아닌 발해인 견제로 해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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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3~15:10] 민족 정체성(Nation) 논쟁
- Nation을 단순히 ‘국민’으로 보면 독립운동은 반국가 행위가 됨.
- 발해인이 금나라에 저항하지 않은 이유: 여진과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 때문.
- 금사에는 “여진과 발해는 본래 동일한 집안”이라는 기록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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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6:31] 고려, 발해, 여진의 민족 관계
- 고려-발해: ‘혼인 관계’만큼 끈끈한 유대.
- 고려-여진: ‘부모 자식 관계’로 묘사됨.
- 당대 인식에선 고려, 발해, 여진은 하나의 민족.
결론
- 발해가 금나라에 저항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민족적 동일성 인식 때문.
- 당대 사람들의 정체성과 민족 개념은 오늘날과 달랐고, 여진족과의 민족 동질성을 바탕으로 금나라에 자발적으로 편입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