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과 신라의 관계사
- (00:01~01:08)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산국은 울릉도로 추정되는 섬으로, 신라 이사부 장군이 **위협 전술(짐승 협박)**을 사용하여 항복을 받아냄. - (01:08~03:20)
고려시대에도 우산국은 고려에 조공을 바쳤고, 여진족의 침입으로 피해를 입음. 고려는 농기구를 지원하고 도망친 백성들을 우산국으로 돌려보냄. - (03:20~04:30)
이후 여진족 침공이 심해지면서 우산국은 쇠퇴. 고려는 우산국 백성들을 받아주며 행정적 편입 시도. 1157년 기록에서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섬으로 평가.
민담 ‘우해왕과 풍미녀’
- (05:40~08:56)
민담에 따르면, 우산국의 왕 '우해왕’은 대마도를 정벌하고, 대마도 지배자의 딸인 ‘풍미녀’를 받아 감. 이후 그녀에게 빠져 왕은 사치와 정사를 소홀히 하게 되며, 신라를 약탈하기 시작함. 신하를 숙청하고 방탕함에 빠진 우해왕은 결국 이사부 장군에게 멸망당함.
단, 이 민담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전설적인 이야기임.
우산국의 기원과 지리적 해석
- (10:02~13:29)
신라는 우산국을 신하로 삼으려 했고, 우산국은 이를 거부. 이사부 장군은 말 모형 전략으로 우산국을 정벌.
‘우시산국’ 또는 ‘옷이산국’이라는 **유사한 이름의 나라가 남한 본토(영덕, 울주 등지)**에 있었다는 설 등장. - (13:29~16:52)
'옷이산국’은 신라에 저항하던 세력으로, 이사부의 기병 급습 전략에 의해 멸망. 이 후손들이 바다를 건너 울릉도로 이주해 우산국을 세웠을 가능성 있음.
이사부 장군과 가야 병탄과의 연결
- (16:52~21:28)
이사부는 신라의 군권을 장악한 인물로, 가야의 소국, 우산국, 가야 본체를 순차적으로 정벌함. 전략적 연속성이 있음.
우산국 정벌은 가야 정벌의 전초 단계였다는 설 제시.
우산국-가야-신라의 정치적 역학
- (22:34~28:03)
가야와 우산국은 연계되었을 가능성 있음. 신라는 우산국이 가야와 손을 끊고 자신에게 귀속되길 원했으나, 우산국이 거부함에 따라 이사부가 정벌.
바다 건너 정벌은 단순 제압이 아닌 전략적 의미 내포.
우산국의 항일과 망명설
- (29:10~30:19)
정복 이후, 우산국 왕족들은 고구려나 함경도 방면으로 망명했다는 전승도 존재.
결론: 우산국은 우리의 역사
- (30:19~끝)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정사와 민담을 종합하면, 우산국은 최소 1500년 이상 우리 역사에 기록된 영토이며, 독도와 울릉도도 이에 포함된다는 주장을 전개.